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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3세가 등장하는 13세기 금화를 발견한 아마추어 금속탐지가

파쵸 2022. 1. 26. 0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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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된 보물을 찾는 것은 흔한 어린 시절의 꿈이며, 어떤 사람들은 종종 고고학 분야에서 직업을 추구하면서 어른으로서 이 꿈을 고수한다. 드물기는 하지만, 아마추어 금속탐지기들이 전문가들에 의해 추가 발굴되고 연구되면서 지식의 큰 도약으로 이어지는 발견을 하는 사례도 있다. 최근 영국 데본의 한 농부 들판에서 발견된 한 발견은 아마추어, 익명의 발견자, 중세 역사학자 모두에게 특히 흥미진진했다. 이 놀라운 발견은 헨리 3세에 의해 채굴되어 13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금화 이다.

그 이름을 밝히지 않은 발견자는 오랜 세월 동안 중단된 후에야 최근에야 금속 탐지 탐구를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발견물을 페이스북에 올렸으나, 그 인상적인 역사적 의미를 아직 인식하지 못했다. 스핑크 앤 손의 그레고리 에드먼드라는 수치의 학자가 온라인에서 동전을 발견했고, 그는 그 동전의 진정한 의미를 알아내라고 조언했다. 1257년경 채굴된 이 금화는 왕좌에 앉아 있는 영국의 헨리 3세의 모습과 궤도를 보여준다. 금화(金花)의 초기 사례 중 하나이며, 재위 당시 알려진 8가지 사례 중 하나이다.

영국의 헨리 3세는 플랜타게넷 가문의 일원으로, 결국 영국 왕좌에 오른 프랑스 귀족의 후손인 통치자 가문이었다. 헨리 3세는 인상적인 56년 동안 통치했다. 이 기간 동안 그는 왕권을 강화하고 중앙집권하는 한편 해외에서도 전쟁을 벌였다. 에드먼드에 따르면, 13세기 왕의 통치 기간 동안, 동전은 은에서 금으로 옮겨가고 있었다. 중동의 땅은 주로 금화를 가지고 있었고, 영국과 나머지 유럽은 은화를 사용했다. "이 시기에[13세기에] 거대한 교차로를 보게 된다. 그래서 서양에서는 금화를, 동양에서는 은화를 얻기 시작한다. 에드먼드 대변인은 CNN과의 인터뷰에서 "양측이 서로 대화하고 있으며 서로 관련돼 있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금화는 노르만 정복 이후 영국에서 채굴되지 않았다. 헨리 3세는 1257년 자신의 금고에서 비잔틴 동전과 이슬람 금 디나르를 재활용하여 이 금속을 재도입한 것으로 생각된다. 동전의 표시는 글루스터의 윌렘 피츠오토의 손을 가리킨다. The King's Goldsmith. 꽃과 십자가가 동전의 앞면을 장식한다. 반짝거리는 아름다움을 넘어, 동전의 뛰어난 상태와 희귀성은 그것을 돋보이게 한다.

영국에서 발견된 보물은 1996년 보물법의 적용을 받지만, 동전이 단일 항목인 만큼, 그것은 발견자의 것이다. 그는  Spink & Son사를 통해 경매에 내놓았는데, 그 곳에서 스핑크 & 손 사가 54만 파운드(728,4만 파운드(728,422.20달러)에 팔렸다. 한편, 잘 보존된 유물은 중세 숫자학의 지식을 발전시켰다.

영국의 아마추어 금속탐지기 전문가가 헨리 3세 시대의 중세 금화를 발견했다.

Both sides of the stunning coin, which dates to around 1257. (Photo: Spink & Son)

The coin—one of only about eight known from its period—went on auction at Spink & Son and sold for £540,000 ($728,422.20).

The coronation of King Henry III. (Photo: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Spink & Son: Website
h/t: [CN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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